시어머님의 고추장
이제니
나는 밥반찬으로 고추장을 유난히 좋아했다. 매년 5월이면, 시어머니는 고추장 담글 고춧가루와 메주가루를 머리에 이고 우리 집에 오시곤 하셨다. 시어머니는 일 년 양식인 고추장이 맛있어야 모든 음식이 맛있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고추장은 정말 명품 고추장이었다.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지금도 그 고추장을 생각하면 군침이 돈다.
갓 결혼한 나는 유달리 밥을 적게 먹었다. 몇 숟가락을 뜬 후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옆에서 지켜보시던 시어머니는 그렇게 먹고 어떻게 아이를 낳고 살겠냐며 밥을 적게 먹는 것을 늘 걱정하셨다. 어쩌다가 내가 밥을 많이 먹는 날은 아주 흐뭇해 하셨다.
나는 결혼하면서 세 가지를 결심했었다. 그 하나는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부모께 드리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나는 양장점 사업을 하느라고 늘 분주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매주 금요일 오후 세시만 되면 시골에 있는 시댁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였다. 매주 시부모를 뵙고, 오순도순 저녁도 함께 지어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밤 한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보실 때마다 내 두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셨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돈 버느라고 고생이 많구나, 건강 잃지 않도록 쉬엄쉬엄 일을 하거라.”
시어머니가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꽉 쥐어 주시면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다른 시어머니들 같으면 아마도 무턱대고 이렇게 핀잔을 놓았을 것이다.
“너는 도대체 뭘 하느라고 매일 그렇게 바쁘게 싸돌아 다니니?”
나는 내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니를 더 좋아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친정어머니와 내 친동생들이 시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친정 식구들 때문에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셨고, 나에게 친정식구들이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 섭섭한 말씀을 하신 적도 없었다. 거기에 매년 고추장을 세 항아리씩이나 담아주시며 친정 큰 이모와 작은 이모에게도 드리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지혜로운 분이었다. 내 친정식구들에게 잘 하시니 나도 시댁 식구들에게 잘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홀로 되신 막내 이모와 함께 살고 계시는 내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그리고는 나의 친정어머니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
“용재 어미 모르게 고추장을 조금만 다오. 용재 어미는 푼수라서 항아리째 퍼주는 애니까.”
친정 쪽에서는 나를 '막 퍼주는 푼수'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무엇이든지 주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들은 날더러 욕심이 없다고 늘 걱정하셨다. 욕심이 좀 있어야 잘 잘 살턴데 너무 욕심이 없어서 걱정이라고들 하셨다. 그러니 내 외할머니는 그냥 작은 병에 조금만 담아 가시려고 나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고추장만큼은 시어머니가 담아주신 것이라 꼭 내게 물어 보셨다.
“할머니가 막내 이모네로 가져갈 고추장을 조금만 달라고 하신다”.
“시어머니께서 그리하라고 하셨으니 항아리 째 하나를 드리세요.”
외할머니께서는 조금만 덜어 가시겠다고 우기시다가 결국 항아리 째 가져가셨다. 어머니께서 내게 귀띔해 주셨다.
“너의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이라 죄송스럽고 우리 식구가 많아서 항아리째 가져갈 수 없으니 조금만 덜어 달라 하시더구나.”
그 당시 우리 집은 한 달에 쌀 한 가마를 먹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자고 가는 손님, 밥 먹고 가는 손님이 항상 줄을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든지 우리 집을 ‘서울역 대합실’이라고 소개했다.
나의 시어머니가 만들어 준 고추장은 정말 입맛을 돋우는 명품 고추장이었다. 고추장을 좋아하는 며느리가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흐뭇해서 만들어주시는 고추장이었다.
내 친정 식구들까지 생각해 주시는 넓은 시어머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 고마움에 지금도 나는 가슴이 뭉클해 온다.
내가 매일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이랬다.
“좋은 시어머니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무병장수하게 해주시고 절대 치매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
내가 결혼 할 당시, 병원에서 60세정도 밖에 못 사실 거라던 병약한 시어머니가 치매없이 건강하게 사시다가 90세에 세상 뜨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