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6 01:18
'능력 그리스도교'를 읽고서
「지금 와서 되돌아 보면, 당시의 나는 항상 내가 기대했던 이상의 것이
그리스도교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때까지
내가 체험했던 이상의 것들을 행하실 수 있고 또한 기꺼이 그렇게 하시리
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나는 그러한 관점의 변화에 대하여
전혀 저항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뒷받침해주는 능력의 역사들을 목격하면서 그러한 확신
이 더욱 굳어져 같다.」
크래프트 교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사역의 방향이 바뀌었고 능력치유 사역의 전도자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지적인 확장의 결과가 아니었다. 위에서 말한 그의 표현대로 그 자신의 신앙에 대한 무능력을 인정하며 끊임없는 각성과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픈 간절함에서 비롯되었다. 즉 내가 믿는 놀라우신 하나님 앞에 나의 삶과 사역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영적인 갈증이 그를 능력사역자로 쓰임 받게 했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샌가 잃어버린 한쪽 부분을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병 고침과 회복의 역사가 복음 전파의 당연 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별도의 신유 사역으로 혹은 특별한 사역자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사역은 유치하거나 비이성적, 비성경적 사역으로 일관해서 취급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그것은 우리가 아마도 서구의 합리주의 세계관에 젖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도 이성적인 신앙생활만이 건전한 믿음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본서를 접하면서 비록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이지만 크래프트 교수와 같은 세계관의 변화를 느낀다. 사실 냉철한 이성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때가 많았다. 이성적 신앙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내 믿음에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한 공허함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것을 오늘 발견한 듯 싶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금 주님 앞에 서고 싶다. 바로 그 자리가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날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서 이제는 당당하게 아파하는 이웃을 위해 치유해 주실 것을 간청하며 복음을 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