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 목사, 시인. 소설가 단편
굴레의 저편
갑작스런 고국의 부름이 정녕 예사롭지 않은 예감을 불러왔다.
동하가 고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아버지가 의식불명이라는 다급한 연락을 누이로부터 받은 직후였다. 동하를 싣고 이륙의 강한 떨림으로 몸부림치며 날아오른 비행기가 고국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진입하자 TV화면에는 꽤 오래된 영화 <도망자>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착잡한 지경에 영화는 무슨 영화이랴 싶었다. 외면하던 동하가 가슴을 죄어오는 음악소리에 끌려 화면에 눈을 돌렸다. 영화는 평온한 도시의 전경을 서서히 전개시키며 시작되었다. 도시의 저편 어느 집에서 한 여인이 괴한에게 희생당하는 장면이 동하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두 손은 꽁꽁 묶여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남편인 주인공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장면이 클로즈업 되었다. 수갑을 찬 주인공이 수사관 앞에 강제로 앉혀졌다. 수염이 덥수룩한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후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고 호송차량으로 교도소를 향하던 중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는 도망자의 처지로 내 몰리고 있었다. 어디론가 정처 없이 달려가며 허공을 휘젓는 도망자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동하는 숨 막히는 추격전 끝에 수사관과 도망자가 진범과 맞닥뜨리는 현장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진범이 수사관에게 권총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도망자는 자신을 추격해온 수사관의 생명을 극적으로 구하고 얌전히 붙잡혔다. 그러나 달리는 차 안에서 수사관은 생명의 은인인 도망자의 손에서 수갑을 풀어주고 있었다.
영화는 사람을 묶고 푸는 장면들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심리 묘사에 동하는 적잖이 공감했다.
“그래 풀어줘야 해. 억울하게 묶인 것들을 자유롭게. . .”
동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아버지를 뵈러가는 길목에서 난데없이 도망자를 만나다니 대체 무슨 조짐이람?”
혼잣말을 되뇌며 좌석 깊숙이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몇 개월 전 동하는 같은 고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태평양 건너 시골마을을 찾았다. 마을 어귀까지 달려 나와 엉엉 울어대는 누이의 손을 잡고 동하는 오히려 터져 나오는 슬픔을 꾸역꾸역 삼켜야만 했다.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지 않은 채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옛날 언제나 박꽃처럼 수줍게 웃던 시골 아낙네가 거기 뉘어 있었다. 오랜 세월 동하의 가슴에 둥지를 틀어온 애잔한 모습이었다. 가슴에서 단 한 번도 떠나보낸 적 없는 어머니의 눈가에 아직도 눈물 자국이 서려있는 듯 했다. 열릴 듯 닫힌 파리한 입술은 아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내어놓지 못했다. 남매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소복으로 그림처럼 누워 있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어머니를 꽁꽁 묶는 장례사의 손놀림을 지켜보던 동하가 불쑥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묶어야만 하죠? 자유롭게 풀어드리면 안 될까요?”
그러나 아버지는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낸 동하는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누이 집에서 버스로 사십분 거리에 있는 전주 J병원 응급실에 뉘어있었다. 아버지는 땅 끝 언저리 해남 어란 포구에서 애지중지하던 고깃배를 팔았다. 그리고는 바로 작은 포구를 떠나 멀리 시집온 딸네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얹혀 살아온 터였다.
누이는 불안한 기색이 완연했다. 오빠 곁에 바짝 붙어 그 동안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열을 올렸다. 아버지는 전도지들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누비며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장터로, 역으로, 버스 터미널로, 학교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가방과 물 한 병을 챙겨들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고기잡이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그 즈음 아버지는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전에도 두 번이나 쓰러지셨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저 불쌍한 사람들’만 되뇌셨죠. 그날도 몸살을 앓고 나신 후라 한사코 말렸는데...”
“성치 않은 몸으로 나가셨겠지.”
“네, 이번엔 아버지 병세가 너무 위독하다는데...”
“생명의 불꽃을 다 태우셨는데 좀 더 지켜보자꾸나.”
병원 응급실은 환자들과 가족들로 붐볐다. 마침 ‘의료대란’이라 불리는 어쭙잖은 동맹파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였다. 많은 병원과 의사들이 환자들을 외면한 채 진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케도 문을 연 J병원은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호흡기관과 심장에 심각한 장애를 발견한 담당 전문의가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병원 전문의들은 이른바 회심의 포뮬러를 아버지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수년 동안 연구 끝에 갓 승인을 얻어낸 의약품이라 했다.
초기에 아버지의 병세가 조금은 안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울트라 사운드 기기의 화면에서는 심장 판막이 광란의 춤을 추어대고 있었다. 덩달아 혈압계의 수치들은 내리 곤두박질하고 있었다.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의료진은 극도로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는듯했다.
동하는 누이와 아침저녁 한 차례씩 교대하며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가 동하의 시간대였다.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누이와 교대했다. 그 다음부터는 환자실과 가족대기실을 오가는 시계추와 같은 일상이 계속되었다.
중환자실은 응급실과는 대조적으로 북적거림이란 없었다. 오히려 차가운 정적이 온 실내공간에 흐르고 있었다. 다만 환자들 머리맡에 설치된 자동 심장측정시스템이 간헐적으로 경고음을 질러대었다. 그 경고음이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 때마다 의료진과 환자가족들은 계기판에 떠오르는 숫자에 시선을 모았다. 숫자가 환자의 생존상태를 가리키는 바로미터였다.
중환자실의 환자들 몸은 열린 부위마다 여러 개의 호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온몸을 호스로 칭칭 감아놓아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었다.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버지의 팔뚝에 주삿바늘 구멍들을 내려고 들었다. 몸에 호스들을 연결하여 굴레를 씌워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동하는 그것이 마뜩치 않았다.
“저 굴레를 벗겨야 해. 자유롭게 풀어야 해.”
중환자실은 묶이고 풀리는 희비가 늘 엇갈렸다. 어느 날 동하는 극적으로 회복되어 일반 입원실로 옮겨가는 환자를 보았다. 그는 운이 좋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곳을 빠져 나갔다. 그러나 그의 팔뚝엔 링거 주사용 호스가 여전히 감겨 있었다.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던 환자가 하얀 천에 덮여 죽어나가기도 했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의 몸에 칭칭 감긴 굴레들을 누군가 서서히 벗겨주고 있는 것이었다.
동하의 눈에 비친 환자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대기자들이었다. 누군가 옥죄이는 굴레를 벗겨주기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갈림길은 아무에게도 선택할 기회를 선뜻 내주는 법이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위대한 힘에 의해서만 굴레를 벗고 풀려나 한쪽 길로 홀가분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원한지 열사흘 째 되던 날 담당 전문의가 남매를 불렀다.
“환자분 스스로 호흡하시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폐기능이 극도로 떨어져 생명보조장치를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명보조장치를 연결하고 난 후 일주일이 지나며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했다. 심실제세동기를 이용한 전기충격과 심폐소생술로 심장의 박동을 살려놨다고 했다. 의료진은 시시각각 위협하는 생물학적 죽음에 저항하고 있었다. 한 가닥 회생의 끈을 놓지 않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담당 전문의의 결론은 마지막 희망의 끈마저 잘라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앞으로 심장마비가 몇 번 더 오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단절을 예감한 듯 누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절망의 나락으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는 표정이었다. 멍하니 의사를 쳐다보는 누이를 이끌고 복도로 나왔다. 화단이 마주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불쌍한 우리 아버지.”
누이의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동하는 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었다.
무심코 화단을 바라봤다. 하얗게 시드는 꽃 한 송이 주위에 쑥쑥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동하의 시선을 붙들었다. 새싹들은 날카롭게 땅겉을 가르며 돋아나고 있었다.
(바로 그거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만나는 생명의 상행선.)
동하는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는 상행선을 타셨어.”
“상행선이라니요?”
“저 새싹들을 좀 봐. 생명의 빛깔을 띠고 있지? 그리운 하늘길이 저런 빛깔이겠지.”
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누이야, 너 생각나? 우리 어릴 때 아버지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란 노래를 제일 좋아 하셨지. 어때, 우리 함께 불러볼까?”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누이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남매는 조용조용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허물처럼 굴레를 벗어놓고 훨훨 날아가는 아버지의 영혼을 배웅하고 있었다.
며칠 후, 네 번째 심장마비가 왔다. 담당전문의는 아버지의 심장을 다시 뛰게는 해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뇌사상태에 들어섰다고 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담당전문의는 생명보조장치의 제거 여부를 신경외과와 마취과 전문의들과 숙의한 후 정식으로 문의해 왔다. 동하는 다음날 누이와 더불어 최종결정 안에 서명하기로 합의했다.
지쳐있는 누이를 대신해서 마지막 밤을 동하가 맡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누이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복도의 벤치에 앉았다. 파란 새싹들 곁에 하얗게 시든 꽃송이가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동하는 생각의 수면에서 오랫동안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야 아버지의 몸에서 그것들을 모두 떼어낸단 말이지? 숨이 멈추지 않으면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단 말이지? 아버지의 육체를 이젠 풀어드려야 해.)
얼마 후 가족 대기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웬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었다. 황당무계한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참 기괴한 일일세. 입원실에서 짐승소리가 들려오다니.”
“그러게요. 밤새도록 들려오는 묘한 소리에 나도 한숨을 못 잤지 뭐요.”
그들의 대화가 동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곧장 그곳을 빠져 나와 복도의 벤치에 앉았다. 어디선가 들려온다는 짐승소리를 포착하려고 귀를 곧추 세웠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동하의 귓전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가 싶었다. 그 소리는 점점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무슨 짐승소리 같기도 했고 사람의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일까? 동하는 두리번거렸다. 들려오는 방향을 가늠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소리는 오른쪽 복도 끝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 곳으로부터 들려왔다. 동하가 자석에 끌리듯 벤치에서 일어났다. 소리 나는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떼었다. 복도 끝에 다다르니 왼쪽으로 또 하나의 복도가 길게 뻗어 있었다. 복도를 따라 입원실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복도를 따라 가다가 문이 한 뼘만큼 열려있는 방 앞에 이르렀다. 소리는 그 안으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짐승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신음소리였다.
머뭇거리던 동하가 조심스레 문을 노크했다.
잠시 후 문이 활짝 열리며 웬 앳된 처녀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에서 중년 여인의 눈이 동하를 응시하고 있었다. 동하는 그들에게 오게 된 동기를 밝혔다.
“사람의 신음소리를 따라 왔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처녀가 뒤를 돌아보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하가 안으로 들어서며 문 뒤쪽으로 얼핏 고개를 돌렸다.
동하는 눈앞에 전개되는 기막힌 광경에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거기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뎅그렁하니 눕혀있었다. 웃통을 다 드러낸 채 두 손목과 두 발목이 모두 침대 네 귀퉁이에 묶여있었다. 네발 묶인 짐승의 모습이었다. 그 환자는 사람이 들어 온 것을 알지 못하는 듯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눈을 감은 환자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줄곧 새어 나왔다. 듣기에 섬뜩한 소리였다.
동하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동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환자의 드러난 웃통은 사람의 몸통 같지가 않았다. 딱딱한 각질로 온 몸통이 뒤덮여 있었고 각질은 목 부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 . .”
동하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커다란 눈물 덩어리 하나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그 덩어리가 눈시울을 때리며 지나갔다. 그 충격으로 동하의 두 눈에는 뜨겁디뜨거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왈칵 달려들어 환자의 손을 붙잡았다. 환자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동하와 눈이 마주쳤다. 짓무른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동하가 손을 잡은 후에도 그 신음소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환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순간적으로 신음소리가 뚝 그쳤다.
동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달려오는 것을 보며 부르짖었다.
“이 황폐한 땅을 보소서. 고통으로 무너진 것을 보소서. 긍휼을 베푸소서!”
오래전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던 친구가 병들어 죽은 적이 있었다. 친구의 주검이 묻힌 무덤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으시던 그리스도는 무덤의 문을 열라 하셨다. 곧이어 비장한 음성으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셨다. 몸이 묶인 상태로 친구가 살아나오고 있었다. 놀라운 기적의 현장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 서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온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아름다우신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그 음성이 주위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쩌렁쩌렁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동하가 중년여인을 뒤돌아보았다.
“이 묶인 줄을 풀어드리도록 하시지요.”
그러자 여인이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반대했다.
“아, 안돼요! 저이를 풀어놓으면 안돼요. . . 여기 저기 쏘다니시면 붙잡을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누가 알아요? 묶어놔야 돼요.”
“아닙니다. 손과 발을 꼭 풀어드려야 합니다.”
동하의 간곡한 부탁에 처녀가 안타까운 듯 여인에게 다가갔다.
“엄마, 그렇게 해드려요, 네?”
여인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동하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동하는 처녀와 함께 환자의 손발을 묶고 있는 굵은 줄을 풀어나갔다. 묶였던 환자의 손목과 발목은 살갗이 터지고, 찢기고, 멍이 들어 보기에도 처참했다.
“얼마나 몸부림쳤으면 이토록 상처투성이가 되었을꼬.”
동하가 탄식하며 환자를 일으켜 앉혔다. 그러자 침대 위에 멍하니 앉은 자세가 되었다. 모녀가 환자를 와락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흐느꼈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남편이 눈을 감았다. 굵은 눈물방울이 양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한참동안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던 모녀가 가까스로 진정했다. 동하가 환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동하를 쳐다볼 뿐 전혀 대꾸하려들지 않았다.
환자의 아내가 의아해하는 동하에게 냉수 한 그릇을 건네며 기막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환자의 이름은 다윗이었다. 다윗은 픽업트럭을 몰며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성실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주위의 많은 고객들을 확보해 나갔다. 영세 업을 면하기는 어려웠으나 작은 업체를 착실하게 키워나가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재앙은 언제나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다윗이 배달을 마치고 다음 배달을 위해 서둘러 차를 몰아 회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에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지역이었다. 커브 길을 돌며 골목길 교차로 지점에 막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오른쪽 골목에서 ‘앵앵’ 소리를 지르며 오토바이 한 대가 막 뛰쳐나오고 있었다. 다윗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소리를 내며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오토바이에 ‘꽝’ 하고 받히는 소리가 났다. 오토바이를 몰던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 차는 가까스로 전신주를 들이받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악을 쓰며 달려와 오토바이 운전자를 응급실로 싣고 갔다.
오토바이의 주인공은 불량배였다. 경찰조사 결과는 다윗에게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불량배는 퇴원하기가 무섭게 다윗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수시로 돈을 뜯어가며 폭행을 일삼았다. 누구에게든 일러바치면 목을 그어버리겠다며 칼 들이대기를 서슴지 않았다.
다윗은 날마다 극한의 공포에 떨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배달업도 집어치워야 했다. 몇 개월 동안 사냥개에 쫓기는 짐승처럼 불량배를 피해 다니기에 급급했다. 다윗은 밤이 이슥해서야 살그머니 집에 들어와 불안한 눈빛으로 집밖을 살펴댔다. 잠을 설치며 끙끙 앓다가 이른 새벽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동일한 고난이 반복되는 동안 다윗은 온몸에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게다가 옆구리에서부터 피부에 딱딱한 각질이 생기더니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그때부터 다윗은 아무하고도 말을 하려들지 않았다. 이미 실어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윗의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토해 내었다.
“너무나 무서웠어요. 저이는 짐승 같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때가 없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때가 없었어요.”
그녀는 북받치는 설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딸이 어머니의 등을 쓸어내리며 대신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게 바로 어제 아침이었어요.”
동하는 다윗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는 참으로 억울한 도망자였다.
동하가 일어나 얌전히 앉아있는 다윗의 두 손을 지긋이 감싸 쥐었다. 다윗의 얼굴에는 어둡고 불안한 기색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다윗 형제를 살리셨어요.”
동하는 벅찬 가슴을 애써 누르며 중환자 가족대기실로 돌아왔다. 벽시계가 밤 열한시를 훨씬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동하의 내면에 남겨진 커다란 기쁨이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그것은 마치 청둥오리들이 물보라를 치고 날아간 자리에 무지갯빛으로 쏟아져 내리는 잔영과 같았다. 입술을 비집고 가늘게 새어 나오는 동하의 독백이 몸을 뒤척이는 밤 내내 계속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여, 사랑이시여. . .”
유리알처럼 투명한 아침을 안고 누이가 왔다.
남매는 손을 비비며 양지 바른 화단 앞 벤치에 앉았다. 화단의 새싹들이 부쩍 자라 있었다. 동하는 도망자 다윗을 안으시고 풀어주시던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누이에게 죄다 들려주었다. 그녀는 놀라움에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굴에 한 움큼 내려앉는 햇볕이 다사로웠다.
동하가 고개를 쳐들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한줄기 다스운 기운이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심장 깊숙이 이르러 어루만지고 아우르는 생명의 물 깃는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영혼의 항아리가 다스움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동하는 눈을 감은 채 바보처럼 입을 헤벌리고 소리 없이 한참을 웃었다.
잠자코 지켜보던 누이가 하늘로 눈길을 돌리자 동하도 덩달아 하늘을 보았다.
남매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그리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햇살 비끼는 청명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전화: 714-843-0217, Cell 714-466-0887, Email: ptryyim@daum.net
* 1964-1965년 청소년 문학동인회-[원고지 동인회] 설립회원
* 1986년 단편소설로 등단, <크리스찬문예>(제3집 등재), [미주한인기독교문 인협회]
* 1995-1996년 KPBC 방송칼럼 및 <생명의 빛을 찾아서> 동화작가
* 1996-2000년 미주총신대학교 총동창회지(년간) 편집인 역임
* 2004년 <미주저널> 칼럼 기고
* 2005년 시로 등단, <월간 순수문학>(제144집 등재), [한국순수문학인협회] 평생회원
* 1986년 제2회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입상, [미주한인기독교문인협회]
* 2005년 제13회 순수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입상, [월간 순수문학]
* 2002년 전국 기독교 그래픽디자인 공모전, 은상 입상, [국민일보/진흥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