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을 읽고. 독후감

 

삼포 가는 길(독후감)

이제니

1. 읽게 된 동기

     기독문협 아카데미의 독후감 숙제로 인해 가상의 고향 삼포를 향해가는 정씨와 동행자들의 이야기인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마음에 와 닿는 게 없이 읽었으나 무조건 숙제를 해야 하니 다시 맘 잡고 세 번을 더 읽어 내려가는 중 황석영 작가의 사회관을 엿보게 되었고 이제는 술술 마지막까지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의 생각을 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2. 줄거리

     이글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교도소에서 목공기술과 용접 기술을 가지고 갓 출옥한 정씨와, 착암기 기술자로 공사판을 떠돌다 공사판이 중단되자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상태인 노영달과, 8세에 가출하여 군부대 주변의 술집을 4년 여간 전전하며 군인들에게 몸을 팔다가 도망쳐 나온 백화라는 여자, 삼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월출로 향해 가던 중 백화를 만나게 된다. 이들이 정씨가 고향 삼포로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되면서 노영달에게 살짝 마음을 주었던 백화의 이야기와 백화의 순정을 바친 고백과 그 과정을 그린 글이다. 이들은 어찌보면 딱히 정해져 갈 곳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막판 인생으로서 그리던 고향에 가서 안기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과는 달리 현대화 되어버린 고향이야기를 듣고 실망을 한다. 결국 노영달과 백화는 각기 제 갈 길로 가고 오직 삼포만을 향하던 정씨는 고향가는 기차 앞에서 씁쓸하게 돌아서 가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3. 나의 느낀 점

     이글은 현대화 되어가는 고향을 사회적인 안목, 즉 다시 말하면 1970년도 황석영 작가가 이글을 쓴 당시는 한참 현대화 물결에 박차를 가하던 시절이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었던 사회적 반감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나는 고향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3살 때 황해도 연백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12년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 1996년도에 미국에 왔기 때문이다. 내게는 뚜렷한 고향에 대한 향수나 혹은 그리움을 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동안에 잠깐 살았던 말죽거리의 집이 떠올랐다. 사리원 농대를 나와서 농업과 축산업을 전공하신 아버지는 사회사업가로서 말죽거리의 야산을 개발하여 방앗간, 양계장, 비닐하우스 개발, (그로 인해 갖가지 농작물 재배법, 이 시절 제일 인기 있었던 농작물은 피망고추 농사였다) 등을 동네 사람들에게 권장하며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서울에 살았지만 부모님이 이곳에 계시기에 자주 내려와서 이른 봄에는 개구리 알을 퍼다가 유리항아리에 넣고 뒷다리 앞다리 나오는 걸 보며 즐겼고, 여름에는, 매미를 잡느라 매미 우는 나무마다 기어 올라가다 미끄러지던 일, 가을에는, 누런 볏잎 사이로 벼메뚜기들이 눈앞을 가리며 날아다녀 벼 한줄기 뽑아다가 메뚜기목을 한 줄로 쭉 꿰어 냄비에 소금 살짝 뿌려 볶아먹던 일, 추운 겨울에는, 집으로 향하는 꼬불거리던 언덕길에서 동상 걸린 발로 몇 번씩이나 미끄러지며 간신히 걸어갔던 일들이 생각난다. 이 글의 계절은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다. 주로 작가들이 겨울을 배경으로 쓰는 경우를 보면 인생의 추운면, 또는 막장 인생을 소재로 하는 내용에는 그 진가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다.

당시 말죽거리도 국가정책으로 인해 남서울을 개발하려고 블도저로 산을 깎고 전기를 가설하고 초가집을 기와로 바꾸는 등 한참 도시화되는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논길을 메워 도로가 생기고 산을 깎아 빌딩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야산에 얽힌 추억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에 내내 섭섭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일을 추진하다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아버지는 고혈압으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이일이 시작되면서 땅 값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이권을 노리는 업자들과 힘든 계획을 추진하였지만 결국은 깊은 곳에서 말없이 잠을 자야만 했다. 그 많은 업적들은 모두 야산에 묻혀 버린 채 .......

     잠깐의 또 다른 감동은 이 짧은 글 속에서도 노영달과 백화의 잠깐 비친 관심과 애정이 순수한 사랑으로 느껴지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노영달이 백화를 업는 순간에는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이 소녀를 업어주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더 아름답게 비쳐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순수한 사랑을 볼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의 첫사랑은 지금의 남편이다. 나 15살 남편은 17살 우리는 9년 동안을 서로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해보고 그냥 만나면 비원에서 데이트하고 광화문 근처 초원 다방에서 음악 들으며 서로 숙제 도와주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사랑의 고통이나 숨막히듯 열정적인 사랑이 아닌 것 같아 아쉽다. 이들의 사랑처럼 순수하고 소리없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정씨가 그토록 안주하고 싶었던 고향 ‘삼포’ 그에겐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요 안식처 였으리라.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의 ‘무진’도 역시 “나”라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묘가 있고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고향의 이름이었다. 무진은 주인공 “나”가 자기(자아)를 돌아보기 위해 아내의 권유로 간다. 고향이란 내가 안기고 싶은 엄마 같은 포근한 존재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나를 반겨주는 나의 모체다. 모든 떠돌이들이 세상에서 상처입고 버림받을지라도 마지막으로 이런 고향으로 돌아 올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바라던 고향 삼포가 아니라, 공사판으로 도시화되어지는 고향 삼포로 사라져가는 기차를 보며 실향민이 가지는 서글픔처럼 마음이 뭉클해 아마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고였으리라. 글을 읽고 있는 나도 고향 ‘삼포’는 물론 작중 가상의 지명이지만 나는 실제로 있는 지명으로 가슴에 와 닿으면서 사라져가던 말쭉거리가 눈에 선하도록 서글픔이 어렸다.

4. 작가 황석영에 대해서

     나는 황석영작가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도는 작품 제목이 “삼포 가는 길” “객지”의 작가라고만 알고 있었다. 몇 년 전인가 황석영작가가 이북에 다녀와 감옥에 수감되어 떠들썩했던 일을 기억한다. 이번 독후감을 쓰게 되면서 황석영 작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그의 삶과 그의 사회관(세계관)을 연구하다보니 그에게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노동과 생산의 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를 다뤘으며 한국문학에서는 거의 낯선 것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주목된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여러 작품을 통하여 구현시켰는데, 구체적 성과물로서 “아우를 위하여”(1972)를 시작으로 해서, “한씨연대기”(1972)는 심화 과정에서의 역사에 대한 통찰과 고발이며, “삼포 가는 길”(1973)은 대표되는 작품이다.